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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출범과 성장(1947 ∼ 1960)

1947년 7월 1일 대구농과대학에서는 제1회 졸업식이 거행되었고, 이때 구 대구중학교 (현 미8군기지)에서 동창회를 창립하였으며, 초대 회장에는 전문부 농학과 1회 이의순 동문(전 원예학과 교수)이, 총무에는 농학과 1회 전재기 동문(전 원예학과교수)이 선출되어 오늘의 동창회 기틀을 마련하였다.
본회는 해마다 모교 졸업식 당일에 총회를 개최하여 신입회원들을 격려하였고,1950년 4회 총회 시까지 임원진은 그대로 유임되었다가 1950년에 전재기 동문이 제4대 회장으로 피선되었으며,부회장에 농학과 2년제 3회 채태석 동문, 총무에는 농학과전문부 3회정치호동문이맡았었는데 1950년 6ㆍ25전쟁으로동창회의기능은중단된 상태 속에서도 회원의 소재파악과 더불어 모교의 발전에 대한 지속사업에관한 관심을 기울였다.
1955년도 정기총회에서 농예화학과 전문부 2회 채인주 동문(대한농화학(주) 사장)이 제9대 회장에 선출되었고, 부회장에는 채태석 동문이 유임되었으며, 모교의교수직을 맡고 있는 전재기 동문이 총무로서 실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동창회의 업무도 본궤도에 올라 우수졸업생에 대한 시상을 행하여 이후매년 수석졸업생에게 금시계를 부상으로 수여하여 왔다. 이 시기는 1950년대 초기에 비하여 안정된 감은 있었으나 6ㆍ25전쟁으로 인한 피해복구 등 사회적, 정치적불안정 등에 기인하여 정상적인 동창회 활동은 기대하기 어려웠으나, 회원들의 성의로 졸업생에게 포상하는 것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고무적인 일이었다. 본 임원진은 1965년까지 10여 년간 4대에서 18대에 걸쳐 동창회의 업무를 수행하면서 동창회의 기틀을 닦아왔다.
그간 농학과와 농예화학과 2개 학과만의 작은 동창회였던 것이 1956년에 원예학과, 그리고 1958년 수의학과가 졸업생을 배출함으로써 해마다 50명 내외의 회원만을 배출하던 것이 이때부터 매년 100여명의 회원을 맞게 되어 전체 회원수도 900명으로 증가되었다. 이 당시에는 농과대학동창회란 기치보다는 각 학과별 모임이 더효과적인 것이라는 여론 하에 1963년 수의학과동문회 발족을 계기로 각 학과동문회가 발족되었다. 이때부터 대학동창회는 이들 각 학과 동문회간의 유대강화를 위한 조정 등 하나의 상징적인 기관으로 변하게 되어 동창회 활동도 극히 한정된 범주를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발전에의 발돋움(1960 ∼ 1980)

제18대 회장에는 농예화학과 학부2년제 3회, 4년제 4회 우정락(전 서진수예(주)회장) 동문이, 부회장에는 채태석 동문, 총무에는 전재기 동문이 1966년까지 담당하였다. 이어 1966년의 제20대에서 1971년의 제28대까지 채태석 동문이 회장, 부회장에는 농화학과 출신인 한영구 동문(전 대구한의대 교수)과 농예학화학과전문부 3회 박호준 동문이, 총무에는 전재기 동문이 맡아 중년 동창회의 업무를 수행해서 동창회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사회의 변화와 농과대학의 발전에 힘입어 중년의 동창회도 1970년대에 들어서는 부회장을 3인으로 하는 기구의 확대개편을 하였고, 1974년의 제31대까지의 회장을 채태석 동문이 맡았으며, 한영구, 농예화학과 4년제 1회 백일중, 원예학과 1회 이우승, 수의학과 2회 박희양 동문 등이 부회장을 맡고, 1972년부터 총무에는 농예화학과 학부 2년제 3회, 학부 4년제 1회 손태화 동문 (전 농화학과, 식품공학과 교수,명예교수)이 제37대까지 동창회의 실무를 보아왔다.
제32대(1975)부터 제34대(1977)까지는 농예화학과 출신 백일중 동문(전 대한상호신용금고 이사장)이 회장을 맡으면서 부회장을 4명으로 늘였고, 총무에는 손태화동문이 맡았다. 이 시기에는 대학의 팽창에 따라 농공학과(1973), 잠사학과(1974), 임학과(1976), 낙농학과(1977), 농생물학과(1978), 농업경영학과(1978), 식품가공학과(1978), 조경학과(1980) 등의 학과들이 속속 증가되었다. 학과증설에 따라 농공학과(1977), 잠사학과(1978), 임학과(1980) 동문회가 각각 창립되어 동창회 산하에 7개 학과의 동문회가 조직되어 성년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성년의 동창회(1980 ~ 현재)

대학의 양적팽창에 따라 농과대학의 오랜 보금자리인 원예학관(구 농대본관, 현정보전산원 위치)이 철거됨에(1985년)따라 농과대학은 현 농대1호관과 농대2호관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동창회는 제34대(1980년)부터 회칙개정에 따라 임원단의 임기가 2년으로 되어 제34대, 제35대 회장에는 농예화학과 학부 2년제 3회, 학부 4년제 1회 남영재 동문(한국야시로 대표)이 취임하였고, 부회장에는 농학과 2년제 1회, 4년제 1회 마용수, 농예학과 4회 장순덕, 원예학과 4회 오세원, 수의학과 3회 김영대 동문이 맡았으며, 제35대까지의 총무에는 손태화 동문이 수고를 하였다.
제36대(1983년)부터 제38대까지 농학과 5회 이낭우 동문(전 상주산업대학교 총장)이 회장을 맡으면서 동창회의 조직도 확대되어 부회장6명을 두었고, 총무와 재무를 분리하여 업무의 내실화를 기하였다.부회장에는 박두오(농학과 5회), 오세원(수의학과 3회), 김영대(원예 1회), 서상길(농공학과 4회), 김영식(원예 1회), 김종성(잠사학과 1회), 신재걸, 이수남(수의학과), 박근동(농공학과), 노병화(농학과), 손삼곤(농예화학 3회), 김진현(농공학과 4회), 노시갑(잠사학과 1회) 등 많은동문들이 참여를 하여 동창회의 발전에 기여하였다.총무에는 농학과5회 김양춘(전 농학과 교수), 원예학과 8회 서영교(전 원예학과 교수) 동문에 이어 농학과 11회 이준탁(농생물학과 교수), 원예학과 10회 최상태 동문 등이 동창회의 살림을 꾸려나갔다. 제38대(1987년)부터는 회장을 역임한 전재기, 채인주, 우정락, 채태석, 백일중, 남영재 동문을 동창회의 고문으로 추대하여 동창회 업무에 자문을 받아 동창회 활성화를 도모하였다.
이 시기에 동창회기금과 장학기금을 모금하기 위하여 불철주야로 헌신적인 노력을 하던 재무간사였던 서영교 동문(당시 원예학과 교수)이 본 동창회 임원회의를마친 그 다음날인 1985년 9월 15일에 급서하셨고, 총무였던 김양춘 동문(당시 농학과 교수)도 한창 동창회 활동을 하시던 시기에 득병하여 1986년 8월에 서거하게 되어 농학과 출신 이준탁 동문(농생물학과 교수)과 원예학과 출신인 최상태 동문(원예학과 교수)이 총무와 재무간사를 이어 받아 헌신적인 노력을 하게 된 어려운 과정을 겪었다. 이분들의 살신의 희생과 헌신적인 노력이 밑거름이 되어 동창회의 기반이 튼튼히다져졌고, 낙농학과, 농생물학과, 농경제학과, 식품가공학과, 조경학과, 임산공학과 등의 동문회도 창립되어 명실 공히 13개 동문회를 거느린 동창회가 되었다.
1988년에는 수의학과가 수의과대학으로 승격, 분리됨에 따라 동창회도 농과대학 동창회에서 분리되어 나가게 되었다.
제39대와 40대 회장에는 농화학과 3회 손삼곤 동문(당시 경북농촌진흥원장)이, 제41대와 42대 회장에는 농예화학과 2년제 3회 배상면 동문(당시 배한산업 회장, 현 국순당(주) 회장), 제43대(1993년)와 제44대에는 농학과 3회 홍순목 동문(직물회사 사장)이 회장을 맡았고, 제39대부터는 동창회업무의 효율화를 위하여 총무, 재무, 홍보 이사를 두어 박우철, 최상태, 이준탁 교수 등 모교에 재직하는 동문들이 동창회의 살림을 꾸려 왔으며, 제41대부터는 간사를 두어 원예학과 14회 이기철 동문(조경학과 교수)이 수고하였다. 고문에는 8명의 역대회장이 취임하였고, 부회장 6명, 총무, 재무, 홍보, 간사 등이 임원단이 되어 동창회를 이끌고 있다.
제45대 회장에는 농화학과를 졸업한 장긍표 동문(전 달서구청장)이 취임하였으며,총무는 역시 농화학과를 졸업한 조래광 동문(현 농화학과 교수)이 봉사해주었다. 제46대 회장에는 원예학과를 졸업한 이수관 동문이 추대되었으며, 총무는 원예학과 1973년에 졸업한 이현택 동문(현 조경학과 교수)이 수고를 해 주었다. 제47대 회장에는 농학과 출신 박두오 동문이 취임하였으며, 총무에는 농화학과를 졸업한 권중호 동문(현 식품공학과 교수)이 살림을 꾸렸다. 고문은 기존의 10명에서 15명으로, 부회장은 10명에서 25명으로 회장단의 조직을 대폭 확대하였다. 또한 이 시기에 동창회의 활성화와 동문 친목도모를 배가하기 위하여 지난 2001년과 2002년 『농대인의밤』행사를개최하였다. 본행사는 2001년 가을 박두오(농학과, 1953) 동창회장과 최종욱(농화학, 1965) 농과대학장의 적극적인 추진으로 지난 50여년의 긴 역사 속에서 새로운 화합의 장을 열게 된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농대인의 밤 행사는 13개 학과동문회, 농업개발대학원동창회 및 최고농업경영자과정 동창회가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1만여 동문이 하나가 되는 화합과 도약의 자리가 되었으며, 많은 선후배 동문들이 참석하여 농대인의 자긍심을 드높이고 모교 발전에도 큰 관심을 가지는 뜻 깊은 한마당이 되었다.
『제1회농대인의밤』행사는송년의밤행사를겸하여 2001년 11월 30일(금) 모교 총동창회관 대회의실에서 동창회 임원 및 동문, 모교 농과대 교수 및 내외 귀빈 등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축하의 장이 되었다. 특히 농대인 밤 행사에서는 농과대학 동문 가운데 모교의 발전과 지역사회 공익에 크게 이바지하여 1만여 동문들의자랑이된동문 1명을선정하여 『자랑스런농대인상』 시상식을가졌다.
영광스런 제1회 농대인 상 수상자로는 모교 및 지역사회 장학사업에 앞장 선 백일중 동문(1953 농예화학과 졸업)이 선정되어 수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백 동문은 시상식 현장에서 일천 만원의 동창회 발전기금을 출연하여 참석한 동문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기도 하였다.
『제2회농대인의밤』행사는 2002년 11월 29일 모교 후문앞 총동창회관 대회의실에서 박두오 동창회장을 비롯한 김달웅 모교 총장(농학과 1960), 이인구농생대 학장(농화학과 1964), 이영돈 농업개발대학원동창회장(농학과 1954), 동창회 고문, 전임 동창회장, 전임학장, 동창회 임원 및 동문, 모교 교수 등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농대인의밤 행사를가졌다. 박두오 동창회장은 인사에서 『동창회활성화를 위해 특별한 이벤트가 있어야 한다는 동문들의 요구에 따라 농대인의 밤 행사를 마련하게되었다』며 행사를 통한 동문화합을 강조하였다. 이어 이인구 학장은 환영사를 통해 『경북대농업생명과학대학은 우리나라 농업발전을 이끌어 온 인재양성의 요람으로서, 오늘 이 행사에서 보여준 동문들의 단합은 위기의 농생대가 새롭게 도약하는큰힘이될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모교 15대 총장인 김달웅 동문은 『농생대는 경북대학교의 모체를 이룬 대학으로서 모교발전에 크게 기여해왔다』고밝힌 후, 자랑스러운 농생대 출신 총장으로서 우리 대학을 세계적인 대학으로 발전시키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며 동문들의 관심과 협조를 당부하였다.
제2회 농대인상 수상자로는 우리나라 전통주 제조기술의 향상과 보급, 적극적인 사회봉사활동과 모교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배상면 동문(1950 농예화학과 졸업)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아울러 모교를 빛낸 대한민국 농업과학기술상 수상 교수들 (엄재열, 이종운, 정재동)의 축하 화한 증정과 백일중 고문의 건배 제의는 장내 분위기를 최고조로 이끌기에 충분하였다. 더욱이 한상진 동문(농경제 1979)의 힘찬 사회로 진행된 2부 순서에서는 노래자랑과 행운권 추첨 등 각 동문회별 장기자랑으로 이어져 선후배간의 정을 돈독히 나누었던 뜻 깊은 시간으로 기억된다.
제48대 회장에는 농화학과를 졸업한 정욱진 동문이 추대되었으며, 총무에는 원예학과 1974년 입학한 박인환 동문(현 조경학과 교수)이 수고를 하고 있다. 특히 2004년은 농생대가 60주년이 되는 해였다. 2004년 3월 현재 농생대 동창회 총 회원수는 13,403명이며(수의학과 811명, 전문부 97명, 2년제 학부 139명, 부설 중등교원 양성소 109명, 계 345명 포함), 동문회별회원수는 다음과 같다.

동문회별회원수

동문회회원수(명)동문회회원수(명)동문회회원수(명)
농학1,804농 화학과1,744원예학과1,655
농업토목공학과855천연섬유학과886임학과755
동물공학과829농생물학과818농업경제학과786
식품공학과842조경학과698생물산업기계공학과262
임산공학과313수의학과811부설중등교사양성소109
특히 1994년 2월 28일 식품공학과 손태화 교수는 36년간의 모교 봉직을 끝으로 정년퇴임식을 가졌다.이와 함께 농대 및 동창회의 발전을 위해 3천여만원의 귀중한 장학기금(이후 춘포 장학금이라 부르고 있음)을 기탁하였다. 이것이 종자돈이되어 2004년 3월 현재 6천 5백여만원 정도의 기금이 조성되어 운영되고 있다.